제목 : 박 용 규(44회·영남일보 논설고문) 등록일 : 2005-05-23    조회: 72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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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별기고

계성10주년 기념사업 출범식에 부쳐


박 용 규(44회·영남일보 논설고문)



1906년 모교가 개교했을 때는 일본의 국권 침탈 정책이 갈수록 강도를 높여가
던 때였다.

문맹천지였던 이 땅에 하나님이 선교사를 보내 계성학교를 세우신 것은 나라
의 등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(그로부터 4년 뒤 한일 합방이 되었다) 그리스도의
진리와 사랑을 가르쳐 앞으로 닥칠 36년간의 노예 생활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
나라 광복과, 민족 중흥을 준비하라는 큰 뜻이 계셨던 것이다.

하나님의 깊은 섭리에 따라 계성은 대구 경북의 3.1운동을 주도했고 해방 후
자유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섰다.

계성 학생들은 3.1 만세 운동을 주도했고 이 후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김천
(김수길), 의성(박상동), 칠곡(이영식) 등지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켜 만세의 물결
이 경북 전역으로 번지게 했다.

이 때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람이 1백57명이고 76명이 형이 확정되었는데 수
형자 중 44명이 계성 학교 교사와 학생으로 수형자의 57%가 계성인 이었다.
`모교가 들어선 곳은 그 때 대구 변두리의 버려진 땅 이었다. 행려 사망자 무
덤과 어린 아이들의 무덤이나 있을 뿐 사람들이 거들 떠 보지 않는 그야말로“똥
산(東山)”이었다.

안의와 선교사는 그 버려진 땅을 사들여 한강 이남 최초의 중등교육 기관을 세
운 것이다. 당시 대구 읍성이 철폐 되어 도시에 곳곳에 무더기 무더기 버려 져 행
인들의 통행을 방해 하던 대구 읍성을 헌돌들을 옮겨 선교사 사택과 계성학교 본
관 건물을 지었다.

대구 읍성을 헌 돌이 이 지역 신교육의 요람 건물을 짓는데 사용 된 것에는
오묘한 역사의 섭리가 깃들여 있다.

대구를 지켜 왔던 대구 성의 성 돌을 초석으로 세워진 계성 학교가 지난 99년
동안 이 나라의 초석 같은 인재를 배출했기 때문이다.
학계, 정계, 관계, 경제계, 체육계, 종교계, 문화 예술계 등 우리나라 거의 모
든 분야에서 계성 인재들은 나라를 빛내는 초석이 되었고 지금도 초석의 역할을
잘 수행하고 있다.

계성의 자랑은 수없이 많다. “여호와 를 경외 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라”
는 교훈 그대로 창조주에 대한 신앙과 여기서 우러나는 자유, 평등, 사랑은 계성
의 기둥 정신이고 이 정신이 3.1운동을 주도하게 했고 민족문화의 말살을 기도
하던 일제의 폭압을 이겨냈으며 광복 후에는 격동기의 소용돌이 속에 민족의 정
신을 올곧게 지켜 왔다.

신탁통치 반대 및 국대안 반대 등에 앞장섰으며 6 25 전란 때는 많은 졸업생
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잡았고 학교 건물은 부상 당한 국군장병을 위한 육군
병원으로 내어주고 학생들은 제일교회등 가 교사를 옮겨 다니며 공부했다.
계성학교는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학교였기에 서구 문물을 남들 보다 일찍
접했고 그에 따라 앞으로의 세대들이 활동할 공간은 국내뿐이 아니고 세계라는
것을 일찍 깨달았다.

그 결과 6만의 계성 동문은 국내 각 분야에서 초석으로, 기둥으로, 모교의 상징
인 면류관 같이 활동할 뿐 아니라 나라밖 세계 곳곳에서 계성을 빛 내 왔고 지
금 이 시간에도 계성을 빛내고 있다.

명실공히 계성은 대한민국의 명문을 넘어 세계의 명문으로 자리 매김 한 것이
다.

그러나 오늘 계성의 위상을 엄밀히 점검하면 지난날의 영광은 간 곳 없고 삼류
학교로 전락하고 말았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.

이렇게 추락 한데는 고교 평준화와 학군 제도 등 학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외
부 여건 때문인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남의 탓만 하고 있어서는 현
재의 삼류를 벗어 날 수 없다.

우리와 같은 여건에서도 학교의 명성을 계속 유지하는 학교가 많고, 또 신흥
명문교가 출현하는 것은 학교 구성원들의 의식과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명성
을 유지할 수 있고 좋은 학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.

양반 뼈다귀 자랑하듯 백년의‘전통과 역사’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재단과
교사, 동창. 학생, 학부모 등 계성의 모든 구성원이 합심 협력해서 우리 계성이 지
난 100년의 영광을 회복하여 더 크게 웅비하고 민족과 인류를 위해, 나라와 세계
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려야
한다.

2005년 4월 23일의 계성 100주년 기념행사 출범식은 이름 그대로 그 보람찬
출발의 팡파레였다.

“계성 계성 만세라. 우리 계성 만만세. 햇빛과 같은 너의 광채를 세상에 비쳐라.
영원 무궁 비쳐라.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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